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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창'
부산부산월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산문화회관/2020.10.28)

<해설지>

글 / 음악평론가 조희창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작품18
Sergei Rachmaninoff : Piano Concerto No.2 C minor Op.18

‘마지막 낭만주의자’, 드디어 날아오르다!

“내 안에서 뭔가 부러져버렸다. 오랫동안 스스로 질문하고 반성해본 결과, 나는 작곡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아주 깊은 무감각의 상태가 되었다. 낮 시간의 절반 이상을 침대에 누워서 파괴되어 버린 내 인생을 한탄하며 보내고 있다.”

젊은 라흐마니노프(1873~1943)는 이렇게 자신을 비관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그였다. 난다 긴다 하는 수재들이 모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 졸업시험에서도 그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최고상을 받았다. 그러나 스물 네 살 되던 1897년에 야심만만하게 발표한 교향곡 1번은 참담한 평가를 받았다. 당시 ‘러시아 5인조’ 중의 한 사람인 작곡가 세자르 퀴는 <누벨 상트페테르부르크>지에다 “지옥에 있는 음악원 학생이 ‘이집트에 내려진 10가지 재앙’을 주제로 교향곡을 쓴다면, 아마도 라흐마니노프의 이 교향곡과 같을 것이다.”라고 어마어마한 혹평을 했다.

라흐마니노프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그는 무려 3년 동안이나 제대로 작곡을 못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지냈다. 밤낮 술에 절어 살고 있는 그를 안쓰러워한 친척이 의사를 수소문한 끝에 심리치료의 대가인 니콜라이 달 박사를 소개했다. 달 박사는 라흐마니노프에게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걸었다. “당신은 이제 협주곡을 쓰기 시작할 거예요.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누가 봐도 최고의 작품이 될 거예요.”라고 힘을 실어주었다. 그 속삭임을 통해 얼어붙어 있던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치료를 받은 지 몇 달 후부터 라흐마니노프는 새로운 곡을 쓰기 시작했다. 1900년 가을부터 1901년 4월에 걸쳐 그는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완성한다. 그 해 11월 9일,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연주와 알렉산더 실로티가 지휘한 모스크바 필하모니의 협연으로 이 곡을 초연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무대로 돌아온 라흐마니노프를 열렬히 환영했다. <루스카야 무지칼나야>지는 이렇게 환호했다. “연주회에 이토록 많은 청중이 모인 적은 루빈시테인의 역사적 공연 이후로 없었다. 이 정도로 열광적인 박수소리가 연주회장에 울려 퍼진 것도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곡으로 러시아 예술계의 최고상인 글린카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고, 오랫동안 좋아한 사촌 나탈리아와 약혼도 하게 된다. 이 때부터 미국으로 떠나는 1917년까지 라흐마니노프는 작곡가로서의 전성기를 맞이한다.

1악장 모데라토(Moderato, 적당히 빠르게).

일명 ‘크렘린의 종소리’라고도 하는 8마디의 강렬한 피아노 화음으로 시작한다. 라흐마니노프는 러시아 사람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종소리와 함께한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로 연주하는 낮고 어두운 종소리가 점점 다가오면 현악기가 제1 주제를 연주하고 그에 맞추어 피아노가 소름 돋는 아르페지오(음을 연속적으로 펼쳐서 연주하는 주법)로 화답한다. 피아노와 관현악은 마치 소용돌이치는 강물 속으로 빠져드는 듯하다. 이어 비올라가 인도하는 감미로운 제2 주제가 나오고 금관악기가 울려 퍼지면서 발전부로 진입한다. 마치 폭풍의 언덕에서 두 팔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듯 강렬한 몽환경을 연출한다.

2악장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Adagio sostenuto, 음을 끌어서 천천히).

오케스트라의 짧은 경과구를 거쳐 플루트가 첫 주제를 연주한다. 이 매혹적인 선율을 다시 클라리넷과 피아노가 이어간다. 최면에 걸린 듯 갖가지 감정의 세계를 헤엄치면서 가라앉았다 솟구치기를 반복한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이 아다지오 선율은 에릭 칼멘이 <All bymyself>라는 팝송에 차용해서 더욱 유명해졌다. ‘마지막 낭만주의자’라는 라흐마니노프의 별명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3악장 알레그로 스케르찬도(Allegro scherzando, 강한 음으로 빠르게)

오케스트라가 춤곡 풍의 리듬으로 시작하면 피아노가 웅장한 제1 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오보에, 비올라와 클라리넷, 호른이 연주하는 서정적인 제2 주제가 대비된다.

두 주제는 서로 만나고 엇갈리며 속도를 올리다가 C장조의 환한 기운으로 바뀌어 클라이맥스로 돌진한다. 장엄하고 상쾌한 울림으로 곡을 마무리한다.

표트르 차이콥스키 : 교향곡 5번 E단조 작품64
Pyotr Tchaikovsky : Symphony No.5 E minor Op.64

‘위대한 울보’, 전성시대를 열다!

“아, 여기는 얼마나 상쾌하고 자유로운지 몰라!” 1888년 4월에 차이콥스키(1840~1893)는 교외의 새 집으로 이사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이 시기의 차이콥스키는 일생에서 가장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제자와의 파혼으로 인해 다친 마음도 아물었고, 폰 메크 부인의 후원으로 경제적으로도 편안해졌다. 유럽 순회공연의 성과도 좋았고,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도 하게 되었다. 버섯을 따고 산책을 즐기느라고 작곡할 여유가 없다고 할 정도였다. 교향곡 5번은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빠른 속도로 써낸 작품이다. 그래서 곡이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우울함으로 딛고 찬란한 빛으로 나가는 여정을 드러내고 있다.

1888년 8월 26일에 작곡을 마쳤고, 같은 해 11월 6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다. 4번 교향곡을 쓴 것이 1878년이니, 중간에 쓴 <만프레드 교향곡>을 제외하자면 10년 만에 드디어 5번 교향곡을 쓰게 된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 곡은 모든 악장에 걸쳐 같은 동기를 반복 등장시키는 순환형식을 채택해서 탄탄한 형식미를 확보했다. 여기다 주특기인 우수에 가득한 주제 선율과 어둠을 떨치고 환희로 나아가는 에너지까지 더해 듣는 이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1악장 안단테-알레그로 콘 아니마 (Andante—Allegro con anima, 느리게-활기차고 빠르게)

클라리넷으로 시작하는 무거운 멜로디는 일명 ‘운명의 모티브’라고도 불린다. 이 멜로디가 악장마다 따라다니며 분위기를 바꿔내기 때문이다. 한결 따뜻한 느낌의 제2 주제가 바이올린에서 흘러나오고, 두 개의 주제는 서로 얽히면서 드라마를 펼쳐나간다. 템포는 빨라지고 악기는 요동을 치며 행진한다. 그러나 운명은 날개를 완전히 펴지 못한 채 낮은 음으로 사라진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콘 알쿠나 리첸차(Andante cantabile, con alcuna licenza, 느리게 노래하듯이, 다소 자유롭게)

차이콥스키는 멜로디의 제왕답게 ‘안단테 칸타빌레’라는 지시어를 각별히 좋아했다. 이 악장 역시 멋진 두 개의 노래 선율을 가진다. 호른으로 시작하는 첫 주제는 영국의 가수 애니 해슬럼이 <Forever Bound>라는 팝송으로 번안했을 정도로 감미롭다. 이 멜로디는 오케스트라로 번져가면서 점점 진해진다. 그러나 이 진한 사랑의 노래 사이에도 어두운 운명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있다.

3악장 왈츠, 알레그로 모데라토 (Valse, Allegro moderato, 적절한 빠르기로)

2악장의 노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왈츠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통상적으로는 3악장에는 미뉴에트나 스케르초를 쓰는데, 그는 파격적으로 왈츠를 선택했다. 차이콥스키는 춤곡 중에서도 왈츠를 특별히 사랑해서 ‘꽃의 왈츠’ 같은 멋진 왈츠곡을 선보였다. 마치 왈츠 리듬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 우아하고 몽환적인 춤사위를 펼친다.

4악장 피날레, 안단테 마에스토소-알레그로 비바체(Finale, Andante maestoso—Allegro vivace, 느리고 장엄하게-빠르게)

지금까지 E단조로 등장하던 운명의 모티브가 E장조로 바뀐다. 이제 운명은 음울한 구석에 빠져나와 찬란한 햇빛 속에 가슴을 편다. 이 모티브는 현악 합주와 금관 합주를 거치면서 부풀어 오른다. 팀파니의 강렬한 연타로 재현부가 마무리되는데, 흔히 이 부분에서 곡이 끝나는 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더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며 피날레를 장식한다.

차이콥스키는 매우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나는 얼마나 늙은 울보인가.”라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의 삶에는 동성애자라는 사회의 비난과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의 경솔한 결혼과 파경, 그에 따른 신경쇠약 등이 뒤따랐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으로 연주 불가능하다고 폄하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인기를 더해갔다. 그가 사망한 지 100년도 더 지났지만, 러시아 작곡가 중 세계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몫이다. 그 중에서 교향곡 5번의 인기는 여전히 최고다!

글 / 조희창(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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