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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수난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 ‘B단조 미사’….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그의 음악을 통해 깊고 무거운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사실 바흐는 성미가 급했으며 고집이 세고 논쟁을 좋아하고 정열적이었다. 동시에 그는 대식가였고 다둥이 아빠였으며 커피를 무척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조희창의 플레이리스트
여름밤에 듣는 노래
(클럽발코니101호/2021.7월~9월)

바흐는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음악 집안 출신이다. 바흐의 고조할아버지는 ‘시턴’이라는 바로크 기타 연주자였고 아버지도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그 후 200여 년 동안 바흐 가문에선 75명이 넘는 사람이 직업 음악가가 되었다. 비록 당시의 음악가라는 직업이 낮은 서민 계급이었지만 바흐는 가업처럼 내려오는 음악 전통 속에서 일찌감치 음악을 익혔고 학구적인 청년으로 자랐다.
1703년 아른슈타트교회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던 18세의 바흐는 당대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 디트리히 북스테후데의 소문을 들었다. 그의 연주를 너무나 듣고 싶던 바흐는 4주의 휴가를 내고 아른슈타트에서 뤼벡까지 450㎞나 되는 거리를 걸어갔다.
북스테후데의 연주를 들으며 음악을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 달콤해서 푹 빠져 있다 보니 4주가 아니라 4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바흐가 작별 인사를 건네자 북스테후데는 자신의 후임으로 오르간 연주를 맡아 달라며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조건이 하나 붙었다. 후임자는 북스테후데의 집안 사람이어야 하니 자신의 딸과 결혼하라는 것이다.
북스테후데의 딸이 어떤 여인이었는가에 대한 자료는 없다. 다만 그날로 바흐가 짐을 싸서 아른슈타트로 돌아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보다 2년 전에 헨델이 찾아왔을 때도 북스테후데는 같은 제안을 했는데 헨델 역시 바흐처럼 도망가 버렸다는 사실이다.

20명의 자식을 둔 ‘진정한 아버지’
뤼벡에서 돌아온 바흐는 교회 감독기관인 시의 성직자회의에 불려가 징계를 당했다. 당시 아른슈타트 성직 회의록에는 바흐의 징계 사유가 다섯 가지나 기록되어 있다. 첫째, 4주의 휴가를 내고서 4개월이나 자리를 비웠다. 둘째, 연주를 너무 화려하게 하는 바람에 신도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셋째, 그런 성가를 너무 길게 연주한다. 넷째, 지휘자로서 단원들과 다툼이 잦다. 주어진 기존의 교회 음악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나게 즉흥 연주를 보태던 바흐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유가 재미있다. ‘낯선 여자를 오르간 연주대로 불러 사랑의 음악을 연주했다’는 것인데 그 여인은 바로 육촌 누이인 마리아 바르바라였다. 바흐는 징계를 받은 이듬해에 아른슈타트에서 뮐하우젠으로 옮겼고 이내 마리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엄숙한 이미지와는 달리 사랑에는 누구보다 맹렬한 바흐였음을 알 수 있다.
불행히도 아내 마리아는 7명의 아이를 낳고서 1720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바흐는 궁정 소프라노인 안나 막달레나 뷜케와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바흐는 그녀에게서 13명의 아이를 더 낳아서 총 20명의 아이를 두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붙을 만하다.

백 년 만에 부활한 바흐
물론 바흐가 음악 역사에서 계속 ‘아버지’로 언급되는 이유가 자식을 많이 낳아서일 리는 없다. 바흐는 위대한 종합 능력을 갖춘 작곡가였다. 그는 당시까지 전해 오던 모든 음악적 이론과 기법을 섭렵해 총정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종교음악의 대가였다. ‘요한수난곡’, ‘마태수난곡’, ‘B단조 미사’ 그리고 200개가 넘는 칸타타¹⁾를 만든 사람이 바흐였다.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선 협주곡의 여러 가지 형태를 모두 선보였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무반주 첼로 모음곡’ 같은 곡에선 악기 한 대로 우주의 소리를 표현해 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당시까지의 하프시코드 변주곡이 닿을 수 있는 최정점을 찍은 작품이며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건반 악기의 모든 조성적 표현을 종합해 놓았기에 ‘피아노의 구약성서’라 불린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작곡 기법을 총망라한 ‘푸가의 기법’을 쓰고 있었다.
고도의 균형과 깊이로 무장한 음악, 어떤 음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호소력이 바흐의 음악을 계속 듣게 만든다. 괴테는 바흐의 음악이 가진 깊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바흐의 음악, 그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하느님이 자신과 나눈 대화다.”
그러나 바흐의 음악은 그의 죽음과 함께 세간에서 잊혀 갔다. 심지어는 그의 악보들이 정육점의 포장지로 쓰였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바흐의 음악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멘델스존 시대에 와서다.
천재로 유명하던 멘델스존은 바흐의 ‘마태수난곡’ 필사본을 보게 되었고 1829년 베를린에서 열아홉 살의 나이로 무대에 올렸다. 베를린 청중들은 이 웅장하고 심오한 곡에 열광했다. 바흐의 음악은 그때부터 제대로 연구되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바흐의 곡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마태수난곡‘도 1729년에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교회에서 초연된 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 후 딱 100년이 지난 1829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젊은 지휘자 멘델스존이 다시 무대에 올렸다. 그때부터 바흐 음악의 위대성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니 이 곡은 ‘바흐의 부활곡’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태수난곡’은 예수의 수난을 다룬 성경 내용을 2부에 걸쳐 합창과 이중창, 아리아로 엮어 놓았는데 특히 베드로가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노래는 유명하다. 예수가 로마군에게 잡혀갈 것을 예상하면서 그때가 되면 모두 자신을 떠날 것이라 말하자 제자 베드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결국 예수가 말한 시간이 닥쳤다. 칼을 든 병사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는 순간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베드로는 가슴을 치며 운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곡은 우리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고해성사와 같은 곡이다.

1645년 베네치아에 유럽의 첫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이후 커피는 엄청난 속도로 유럽에 퍼졌다. 당시 바흐가 일하던 라이프치히는 커피하우스의 유행이 막 꽃피는 때였다. 1715년에 생긴 치머만 커피하우스도 라이프치히의 명소가 되었고 일에 지친 바흐는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곤궁한 삶을 달랬다.
카페 주인인 고트프리트 치머만의 부탁으로 바흐는 매우 이례적인 세속 칸타타 한 곡을 완성했다. 그것이 작품번호 211번 ‘커피 칸타타’다. 커피를 그만 마시라는 아버지의 말에 딸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이 노래를 부른다.
“커피 맛은 정말 기가 막히죠. 수천 번의 키스보다 더 달콤하고 맛 좋은 포도주보다 더 부드럽죠. 커피,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요. 내게 즐거움을 주려거든 아, 커피 한 잔을 채워 줘요.”
이렇게 거장은 최고의 커피 CM송 한 편을 남기게 되었다.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고서 “그래, 바로 이 맛이야”라며 행복해 하는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바흐가 여기에 숨어 있다.

중세를 호령하던 교회의 시대가 힘을 잃게 되자 바로크시대는 춤의 시대가 되었다. 각지에 숨어 있던 춤이 연회장에 넘쳐흘렀고 이 춤곡들을 기악곡으로 만들어 모음곡 형태로 연주하는 것이 크게 유행했다.
바흐 역시 춤곡 모음곡을 여러 가지 형태로 만들었다. 관현악 모음곡 BWV1066 ~1069, 무반주 첼로 모음곡 BWV1007~1012 그리고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 등의 작품이 대표적인 춤곡 모음곡이다.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의 ‘샤콘’은 수록된 곡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곡이며 가장 유명한 곡이다. 샤콘은 스페인 지방에서 유행한 4분의 3박자의 장중한 춤곡이다.
이 춤의 리듬을 기악적으로 소화해 바이올린 한 대에 담아낸 것이 바흐의 샤콘이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홀로 서서 별을 바라보는 것같이 막막하면서도 거룩한 느낌이다.

바흐가 라이프치히에서 일하던 당시에 러시아 대사로 부임한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라는 백작이 있었다. 그는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고트리프 골드베르크라는 건반악기 연주자를 고용해 음악을 들으며 잠을 자보려고 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자 골드베르크는 바흐에게 백작의 수면용 음악을 부탁했다. 바흐는 간단한 멜로디의 아리아로 시작해 무려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처음의 아리아로 복귀하는 거대한 클라비어 변주곡을 하나 써주었고 골드베르크가 백작의 곁에서 처음으로 연주했다. 그것이 지금도 바흐의 피아노곡 중에서 최고의 명곡으로 추앙받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바흐의 정성스러운 음악 처방을 복용한 카이저링크 백작은 나름대로 효과를 보았고 바흐에게 특별 보너스까지 지급했다. 그런데 현대의 음악 애호가들은 너무나 아름다운 이 곡을 들으며 잠 못 이루게 되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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